'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데이비드 이글먼 'Incognito'는 우리가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를 흥미롭고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자아에 대한 착각을 깨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갑진 기회.
내 안의 타인: 우리가 모르는 뇌의 주인공들
'나는 내가 나를 안다고 믿는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이글먼은 'Incognito'에서 이 생각에 조용히 의문을 던진다. '당신이 의식하는 당신은, 당신의 일부일 뿐'이라고.
이글먼은 인간의 뇌를 마치 다당제 국가처럼 묘사한다. 이 나라는 단 하나의 대통령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당 - 즉 여러 신경 집단 - 이 서로 논쟁하고 경쟁하며, 때로는 갈등을 겪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사실 그 배후에서는 수많은 신경 회로들이 저마다의 의도와 목적을 갖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내렸다고 믿는 경정이, 사실은 무의식 속에서 이미 정해졌을 수도 있다는 말.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한 예로, 당신이 카페에서 커피를 고른다고 가정하자. 아아 일지, 라떼를 시킬지 고민하던 끝에 결국 라떼를 선택했다고 하자. 당신은 스스로의 입맛이나 기분에 따라 선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무의식 중에 며칠 전 SNS에서 본 라떼 사진, 바쁜 아침에 달콤한 게 땡겼던 기억, 혹은 단순히 익숙한 선택에 대한 쾌감이 합쳐져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는 것이 이글먼의 설명이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적 정보 처리'는 이처럼 일상의 거의 모든 선택에 개입한다. 우리 의식은 이 무의식의 결정을 나중에 '설명'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극장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객은 보지 못하듯, 우리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뇌의 이면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놀라운 것은 이런 무의식이 단지 '숨겨진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우리의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간다는 점이다.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 이유 없이 느껴지는 불안감, 설명할 수 없는 호감과 반감-이 모든 것들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글먼은 이런 현상을 통해 '우리는 사실상 우리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법적 판단에까지 영향을 주는 이 논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관념을 근보부터 흔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단정 짓기엔 이르다. 이글먼이 말하듯,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뇌의 한 구성원이다. 다만 과장되게 여겨졌던 '자기 인식'의 힘을 재정립하고,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당신의 안에 당신이 모르는 당신이 산다' 그리고 그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뇌는 언제 진실을 말하지 않을까?
'기억은 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편집된 소설이다'
이 말은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믿지만, 뇌는 종종 '필요에 따라'진실을 애곡한다. 때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때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혹은 단지 정보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린 시절에 친구와 심하게 싸운 기억이 있다고 해보자. 시간이 흐른 뒤, 그 기억을 되짚으면 당신은 '나는 억울했어'라며 자신을 피해자로 설정해 두었을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때 당신이 먼저 화를 냈을 수도 있다. 뇌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경험의 감정적 색채를 바꾸고, 때론 완전히 다르게 각색해버리기도 한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기억의 재구성'이라 부른다.
이글먼은 뇌를 마치 '기능적 거짓말쟁이'라고 설명한다. 뇌는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기억을 다듬고, 때론 '의미'를 덧입혀서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든다. 진실보다 생존이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 뇌는 진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기억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판단, 심지어 윤리적 결정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
놀아운 건 이런 왜곡이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기본 설정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자기 합리화, 확증 편향, 선택적 기억 - 이 모든 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의 일부다.
또한 이글먼은 뇌의 진실 왜곡 메커니즘이 법률 시스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범죄자의 '의도'나 '책임 능력'을 평가할 때 우리는 의식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무의식의 영향력을 간과하곤 한다. 하지만 뇌는 때때로 '자신조차 모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니 법은 '자유의지'를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뇌의 기능을 알게 되면, 우리는 타인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덜 비난하게 된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 뇌의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책임을 회피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뇌의 한계를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한 '보안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글먼은 전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착각의 정체
'우리는 우리 뇌의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손님이다'
이 말은 이글먼의 이 책에서 던진 충격적인 선언 중 하나다. 우리가 느끼는 '자아'라는 존재는 뇌의 방대한 처리 시스템위에 떠 있는 얇은 거품 같은 것이다. 즉,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 - 자신의 감정, 판단, 의지 - 는 실제로 무의식이라는 깊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작은 의식의 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아가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주도한다고 믿는다. 내가 결정 내리고, 내가 주체적으로 행동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글먼은 말한다. 실상 우리의 대부분 행동은 '의식적인 생각'이 아니라, 무의식적 정보처리와 자동 반응의 결과라고.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실험 참가자에게 두 개의 버튼 중 하나를 누르게 하고, 누르기 직전에 뇌 활동을 측정했다면, 놀랍게도 뇌는 사람이 결정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기 7초 전'에 이미 어떤 버튼을 누를지 결정해 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뇌는 결정을 내리고, 의식은 그저 그 결정을 '보고받는' 부서일 뿐이라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인가?'라고, 하지만 이글먼은 단순히 인간이 무력하다는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자아는 '복수의 자기들(multiple selves)'로 구성된 팀처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안에는 다양한 '목소리'와 '충동'들이 공존한다. 어떤 때는 충동적인 나, 어떤 때는 책임감 있는 나, 또 때론 무기력한 내가 앞장서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자아들 사이에서 '내가 누구인지'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여러 자아들 간의 갈등을 인식하고 조율하려는 태도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운 자각이며, 이성의 시작이다.
이글먼은 이런 복합적인 자아의 개념이 심리치료나 법적 판단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행동은 충동적인 자아가 주도햇을 수 있고, 다른 자아는 그걸 후회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일한 '나'가 아니라, 협상과 타협 속에서 살아가는 '자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Incognito'는 자아에 대한 우리의 오만한 믿음을 깨뜨리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전부를 알 수 없지만, 당신은 당신을 더 잘 이해하려는 존재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타인의 말실수에, 자신의 실망감에, 그리고 오늘도 예상치 못한 감정이 휘몰아칠 때, '아, 그건 내가 아니라 내 뇌가 한 거야'라고 말하며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